최근에 책 한 권을 읽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이다.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는 진화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이고 신경과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적자생존이 아닌 친화력과 협력을 토대로 생존하고 번성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0년이 가까워지는 시간 동안 적자생존은 인류 진화 과정을 관통하는 개념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책의 마지막 쪽까지 전부 읽는 순간, 나는 저자의 글을 사람들이 타인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기를 바라는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신체적으로 뛰어났던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지고, 호모사피엔스가 끝까지 생존하여 지금까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화력과 사회성 때문이다. 결국 우리, 인간에게 협업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은 필수적이다. 동물 또한 마찬가지라고 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늑대와 달리, 친화력이 높은 개들은 계속 늘었다. 사나운 침팬지보다 포용력이 큰 보노보가 더 많이 번식에 성공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타인에게 다정한가. 물론, 무조건 남에게 다정해지기를 바라는 의미는 아닐 테다. 하지만 타인에게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우린 타인에게 다정하지 못하다. ‘다정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이 많다이다. ‘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한다. 결국 사랑을 느끼는 마음이 많은 게 다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은 진정 타인의 상황과 마음으로 그 타인을 생각할 때 생겨난다고 난 생각한다. 이번 기획 기사를 작성하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된 일이 있다. 장애 학우 쉼터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장애 학우들은 대동제를 즐기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온다는 사실에 그저 신났던 나는 모두가 즐기는 축제라고만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그래도 나는 다정한 편이지 않을까라고 했던 생각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생각하고, 타인의 입장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공감을 배워 나가야 한다. 한 개인이 태어나 성장한다는 것엔 얼마나 타인을 이해하게 되느냐가 담겨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배척과 분리가 있다. 그것이 설령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도 말이다. 사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장애인이라서, 어린아이라서, 또 노인이라서 공동체의 생활 속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고, 공동체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다.

우리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하자. 정이 많은 사람이 되자.’ 책을 읽고 난 후 곱씹게 되는 말이다. 인간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정책은 다정함이다. 조금 덜 미워하고 조금 더 사랑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다정한 당신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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